저의 한국 이름은 황기선입니다. 이제부터는 제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비록 30년이 걸렸으나,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정체성을 이제 되찾을 준비가 되었다고 황기선 기자가 씁니다.
이 First Person기사는 CBC 오타와 황기선 기자의 경험담입니다. CBC의 일인칭 이야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FAQ를 참조하십시오.
한국어 번역 및 삽화: 이덕한, 시니어 디자이너, CBC 뉴스 그래픽
제 삶의 대부분은 저의 이름이 부끄러웠습니다.
운전 면허증이나 여권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항상 저를 불렀던 저의 영어 이름이 부끄러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법적 이름. 한국 이름. 진짜 이름. 즉 할아버지께서 태어났을 때 지어 주신 그 이름이 부끄러웠습니다.
황기선.
이를 영어로 쓰면 Hwang Ki Sun, 또는 저의 성을 뒤로 바꾸면 Ki Sun Hwang이 되는데, 전자는 성이 이름에 먼저 나오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성명 구조입니다. "Gkee Suhn"과 같이 발음합니다. "Guy" (프랑스어 이름)와 "key"가 섞인 것처럼 이름을 발음합니다.
저의 이름에는 이 땅을 선함으로 항상 밝게 비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대부분을 저의 이름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매년 학교 첫날이 두려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날때마다 "영어 이름"이 있다는 점을 공손하게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대체 교사께서 들어오셨을 때는 최악이었습니다.
"키? 카이? 카이…. 쑨?"
학교 친구들은 누군지 알수없어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킥킥 웃어대고는 했습니다.
굴욕감을 느끼며, 저는 즉각 손을 들고 수정하곤 했습니다.
"프리실라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프리실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어렸을 때, 이미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부모님께서는 왜 프리실라라는 이름을 주셨는지 물어보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가 캐나다에 이민 왔을 때 (제가 세 살이었을 때) 저를 성경에 나오는 여인인 프리실라라고 부르라는 제안을 누군가에게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내로 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들어갈 때에,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목사님 한테 부탁을 했지. 믿음 있는 좋은 이름 지어달라고," 황정숙, 즉 제 어머니께서 제가 이 글을 쓰려고 전화를 드렸을 때 한국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여기선 영어 이름 지어야 되는지 알았지. 지금 생각 하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리고 여기서 '기선' 그러면 좀 어려워해 ... 사람들이 발음을," 어머니가 덧붙이셨습니다.
제가 프리실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서 다행이라고, 자라며 제 한국 이름이 부끄러웠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웠다는 말을 들으신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점심으로 김밥을 챙겨주셨을 때, 울고 화가 나서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급우들은 나를 놀렸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과 함께 쉬는 시간에 김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너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어. 왜냐하면 기선이라는 이름이 너네 민족에 어떤, 그런거 있잖아, 우리 나라의 자긍심," 어머니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캐나다인이지만, 코리안 캐나다인이잖아."
캐나다 북부에서의 생활
제 이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처음으로 진솔하게 마주한 것은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에서 살 때였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원주민 이름을 되찾기 위한 운동에 대해 보도하고, 이 운동이 자신들의 역사와 다시 연결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태어났는데 왜 우리는 그 이름들을 가지고 태어날 수 없나요?" 데네니즈 바질은 2018년에 제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몇 년 전에 법적으로 이름을 제이콥에서 데네니즈로 변경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고난 권리에요,"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핑고]는 우리의 조부모 [또는] ... 증조부모의 이름이 아니었어요. 정부에서 우리 사람들에게 붙인 이름이었지요."
안나 핑고는 그녀의 성이 원래 핑거수거룩, 또는 그녀가 이누비알룩툰 이누이트어 철자법에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핑가수구룩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문화]를 일깨우고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업무 일과를 마치고 제 마음은 착잡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숨기고 싶었을까? 나는 나의 언어 나의 문화가 자랑스럽지 않은 걸까? 왜 "캐나다 표준"이라는 것에 맞추고자 하는 걸까?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제가 캐나다 북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이름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때까지도 저는 제 이름을 아예 법적으로 영어식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저에게 무엇을 어떻게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이름은 아름다워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성장하면서 겪은 인종 차별적 사건들 및 미세한 차별들은 "아시아적인" 부분인 제 이름을 숨기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피부색, 음식, 문화, 생활 습관 및 모국어 때문에 못났거나 다르다고 여겨짐을 느끼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에게 기선은 내가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상징했습니다. 반면에 프리실라는 여기서 조금 더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름에 대해서는 그렇게 important 한것 같지 않아. 너 니깐. 바로 너. You. 기선 and Priscilla. It's you," 대화를 마치며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Doesn't matter!"
어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이토록 새로운 불을 밝히고 이름에 지워진 수십 년간의 감정적 짐을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되찾는 저력을 보여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저를 기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용기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작게나마 시작했으나, 이는 여전히 과정이며 일상적인 선택입니다. 일례로 작년에 여러 소셜 미디어 계정에 제 한국 이름을 추가했습니다.
은행 창구 직원과 캐나다 국세청 공무원같이 저를 법적 이름으로 부르는 이들에게 굳이 달리 불러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자 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 더 많은 분과 함께 제 이름과 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바이라인에 본래의 이름을 붙이고자 합니다.
제 이름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제 두 이름들은 둘 다 아름답습니다.
함께, 이 이름들은 자기 정체성과 씨름하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의 제 여정을 드러냅니다.
30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황기선으로서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동기부여 및 문화적 이해에 도움이 될 호소력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여러분께 듣고자 합니다.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